시작은 한국어 자막이었습니다.
미국에서 약학을 공부하던 한 학생이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토론을 보았습니다. 신앙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답변. 한국에서도 이런 대화를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.
크레이그 측에 허락을 구하고, 강연과 토론 영상에 자막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. ‘On the road to Damascus.’ 훗날 다마스커스로 이어질 채널의 첫 이름이었습니다.
직접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.
2017년, Damascus TV로 무대를 옮긴 뒤 라이브 방송에서 무신론자들과 토론하고 시청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. ‘변증’이라는 말부터 낯설던 때였습니다. 신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반론을 주고받는 일이 왜 필요한지, 그 일부터 설명해야 했습니다.
2019년에는 하버드와 MIT의 한인 박사과정생들을 찾아갔습니다. 신의 존재와 우주의 기원, 진화, 예수의 역사성, 세상의 고통을 놓고 대화했습니다. 두 편에 걸친 대화는,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을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.
원본 영상 ↗책으로만 읽던 저자들에게 직접 물었습니다.
신약학자 니제이 굽타에게는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에 관한 스물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. 『도미니언』의 저자 톰 홀랜드에게는 기독교가 서구 문명에 무엇을 남겼는지 물었습니다. 이후에는 데일 앨리슨과 역사적 예수 연구, 기적과 부활, 학문과 신앙 사이의 긴장을 다뤘습니다.
한국의 독자들이 품었던 질문이 저자에게 직접 전달되고, 그 답이 다시 한국어로 돌아왔습니다. 해외의 신학과 변증을 만나는 통로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.
원본 영상 ↗한국에도 본격적인 종교토론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.
구약학자 전성민 교수와 신약학자 정성국 교수가 ‘성경은 어떻게 읽는 책인가’를 놓고 공개 토론했습니다. 같은 성경을 읽는 두 학자가 서로의 해석에 질문하고 반박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지켜봤습니다.
그해 5월에는 기독교 비판 채널 신전TV와 두 차례 라이브 토론을 벌였습니다. 구원론은 잔혹한가. 기독교의 신을 믿는 것은 유해한가. 양쪽 채널의 시청자들이 함께 보는 자리에서, 불편한 질문을 그대로 다뤘습니다. 첫 토론에서 드러난 한계는 두 번째 토론의 진행 방식을 고치는 데 반영했습니다.
토론 문화를 만들려면, 실제로 토론을 열고 그 경험을 쌓아야 했습니다.
원본 영상 ↗그다음에는 새로운 룰을 만들었습니다. 홀리컴뱃의 시작이었습니다.
관객이 질문을 던지고, 두 사람이 같은 질문에 답하고, 관객이 그 답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. 엠마오연구소와 함께 이 형식을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습니다.
홀리컴뱃은 두 시즌에 걸쳐 걸출한 기독교 논객들을 배출했습니다. 참가자들은 치열한 질문과 검증을 거치며 자기 이름과 목소리로 대중 앞에 섰습니다. 신학교 교수들도 같은 룰 아래 질문을 받았습니다. 예정론과 구원론, 과학과 신앙처럼 어렵게 여겨지던 주제에 시청자들은 각자의 판단을 보탰고, 다음 대결을 기다렸습니다.
이후 유읽남과 함께 만든 ‘신들의 전쟁’에서는 개신교·가톨릭·불교·원불교의 참가자들이 같은 무대에서 답했습니다. 질문을 나누는 자리는 더 넓어졌습니다.
마침내, 사람들이 토론을 보러 모였습니다.
2025년 ‘홀리컴뱃 아고라’에는 350명이 모였습니다. 처음 기대했던 100~150명을 넘어선 숫자였습니다. 개신교와 가톨릭, 예정론과 진화론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였습니다.
무대에서는 날카로운 반론이 오갔습니다. 대결이 끝난 뒤에는 어려운 자리에 응해 준 상대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. 의견이 크게 달라도 함께 무대에 서고, 끝까지 대화할 수 있다는 경험이 남았습니다. 홀리컴뱃은 뉴욕에서도 열렸고, 그곳에서는 이민 교회와 현지 청중의 질문이 새로운 출발점이 됐습니다.
원본 영상 ↗THE NEXT CHAPTER
다른 이들의 토론을 소개하던 일이,
사람들이 직접 만나 묻고 답하는
자리를 만드는 일로 자랐습니다.
그 사이 한국의 시청자들은 해외 학자에게 질문할 수 있었고, 기독교 논객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무대를 얻었습니다. 신학은 공개적인 토론의 주제가 됐고, 청중은 질문과 판단으로 그 대화에 참여했습니다.
다마스커스는 한국교회 안에 깊이 생각하고 성실하게 답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 왔습니다.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세상의 질문 앞에 설 수 있도록, 하나씩 자리를 만들어 왔습니다.
우리가 한국교회와 함께 쌓아 온 역사는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. 질문을 피하지 않았던 사람들, 답을 준비했던 사람들, 그리고 그 대화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의 기록으로 말입니다.
이제 더 큰 질문과 더 넓은 만남을 준비하는
다마스커스의 다음 장을 지켜봐 주십시오.

